
13년 차 실무자로 일하다가 덜컥 팀장이 되었을 때, 솔직히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아, 그냥 내 일만 하던 때가 좋았는데.'
실무는 단순했다.
내 몫의 일을 내가 처리하면 끝이었다.
조금 늦어지면 그냥 내가 야근해서 막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관리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매일 아침 출근 시간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시계를 보게 됐다.
몇 분 늦은 것 가지고 굳이 말을 얹어야 하나 고민하는 내 모습도 구질구질해서 싫었다.
월요일마다 겹치는 연차 신청서를 볼 때면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누구는 오래전부터 잡힌 약속일 테고, 누구는 꼭 그날이어야 할 사정이 있을 텐데 다 받아주자니 당장 팀 업무가 멈춰 설 판이었다.
지적하자니 팀 분위기를 망칠까 봐 겁이 났고, 모른 척 넘어가자니 묵묵히 제시간에 출근하는 사람들한테 미안했다.
착한 팀장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랑 중심은 잡아야 한다는 압박감 사이에서 혼자 속을 꽤나 끓였다.
메신저 창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문장을 썼다 지우는 날도 늘어갔다.
그러다 문득 알았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기준 같은 건 애초에 없다는 걸.
누구한테는 아쉽고, 누구한테는 불편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최소한 하나는 있어야 했다.
내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흔들리지 않는 선.
모두가 좋아하진 못해도, 적어도 그 선이 왜 그어졌는지는 납득할 수 있어야 했다.
그때부터 곤란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퇴근 후에 엑셀을 켰다.
그날 있었던 일을 다시 복기하면서 어디까지가 개인 사정이고 어디부터가 팀의 문제인지,
무엇을 예외로 두고 무엇을 공통 기준으로 묶어야 할지 숫자로 정리해 나갔다.
- "9시 2분까지는 시스템 버퍼로 치자. 출근길 엘리베이터까지 관리할 수는 없으니까."
- "지각 잡느라 매번 얼굴 붉히지 말고, 묵묵히 자리를 지킨 사람한테 조기퇴근 같은 보상을 주자."
- "월요일 연차가 몰린다고 내 기분대로 자르지 말고, 팀 가동률을 기준으로 서로 조율하는 룰을 공유하자."
거창한 시스템을 만들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내가 덜 곤란하고 싶었다.
매번 같은 일로 팀원들이랑 감정 섞인 줄다리기를 하기 싫었고,
누구한테는 물러터지고 누구한테는 깐깐한 팀장이 되기도 싫었다.
그래서 만든 생존용 양식들이었다.
그런데 기준이 하나둘 쌓이면서 생각보다 많은 게 달라졌다.
선이 분명해지니까 팀원들도 억울하다는 말을 덜 했다.
안 되는 이유가 '팀장이 꽁해서'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운영 기준' 때문이라는 걸 아니까.
나 역시 편해졌다.
매번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고,
원칙을 지킨답시고 억지로 악역을 자처할 일도 줄었다.
그냥 기준을 담담하게 설명하면 됐다.
사람을 통제하려고 애쓰기보다,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부딪히지 않도록 판을 짜주는 게 관리자 일이라는 걸 배웠다.
지금도 모든 기준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새로운 일이 터지면 기준을 손보고, 예외가 생기면 또 머리를 싸맨다.
그래도 예전처럼 모든 상황 앞에서 혼자 감정적으로 흔들리지는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사람을 탓하기 전에 기준부터 본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
요즘 퇴근하고 노트북을 켜서 그때 만든 파일들을 다시 다듬고 있다.
매일 밤 메신저 창 앞에서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라 지쳐 있던,
착한 사람이면서 일도 잘하는 팀장이 되고 싶어 끙끙 앓던 그 시절의 나 같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기준은 없었다.
다만 조금씩 양보하더라도 모두가 이유를 알고 납득할 수 있는 선을 긋는 것.
그게 내가 찾은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